연옥이라는 게 있을까 (퍼옴)
 운영자  | 2012·05·05 13:53 | HIT : 2,767 | VOTE : 254 |
연옥이라는 게 있을까

로마가톨릭교회가 만든 비성경적 거짓 교리

성경에는 연옥이 없다. 천주교의 연옥 교리는 정경(正經)에 근거를 둔 것이 아니다. 이 연옥설을 뒷받침할 만한 증거를 교회사의 초기 수세기 동안에는 찾아볼 수 없다. 성경은 사람이 죽은 후에 거하는 영원한 처소는 천국과 지옥 두 곳뿐이라고 분명히 언급되어 있다. 그러므로 천주교의 연옥 교리는 로마가톨릭교회가 고안해 내어 만든 비성경적인 거짓 교리이다. 여기서는 이러한 비성경적인 연옥에 대해 그 정의와 유래 그리고 근거와 문제점 등을 살펴보자. 또한, 전직 가톨릭 사제들의 연옥에 대한 견해에 대해서도 알아보자.

먼저 비성경적인 연옥의 정의에 대해 살펴보자.

(1) 국어사전에서 연옥은 천주교에서, 죄를 범한 사람의 영혼이 천국에 들어가기 전에, 불에 의한 고통을 받음으로써 그 죄가 씻어진다는 곳. 천국과 지옥 사이에 있다고 쓰여 있다.

(2) 천주교 용어집에서 연옥이란 하느님을 철저하게 등진 사람은 지옥의 벌을 받을 수밖에 없다. 그 외에 하느님께 귀의하여 죄를 용서받았으나, 다소간의 흠이 있는 자는 세상을 떠난 후 하느님 대전에 나아가기 전에 스스로 정화되어야 할 것이다. 이렇게 정화되는 상태를 장소로 표현하여 연옥이라 일컫는다고 쓰여 있다(<천주교 용어집>, 최형락, 성신출판사, 242쪽).

(3) 가톨릭교회 교리서에서 연옥은 하느님의 은총과 사랑 안에서 죽었으나 완전히 정화되지 않은 사람들은 영원한 구원이 보장되기는 하지만, 하늘나라의 기쁨으로 들어가기에 필요한 거룩함을 얻기 위해 죽은 후에 정화를 거쳐야 한다. 교회는 선택된 이들이 거치는 이러한 정화를 연옥이라고 부른다고 쓰여 있다(<가톨릭교회 교리서 제1편>, 한국천주교중앙협의회, 389쪽).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을 통해, 연옥 교리의 비성경적인 면을 살펴보자.

(1) 가톨릭 성경이나 개신교 성경에는 연옥이 없다. "예수님께서 그(십자가의 강도)에게 이르셨다. 내가 진실로 너에게 말한다. 너는 오늘 나와 함께 낙원에 있을 것이다(루카 23:43)." 이 말씀처럼 강도에게도 연옥은 없다.

(2) 성경에 예수님은 천국과 지옥 사이에 큰 구렁텅이가 있다고 말씀했다. "우리와 너희(천국과 지옥) 사이에는 큰 구렁이 가로 놓여 있어, 여기에서 너희 쪽으로 가려 해도 갈 수 없고 거기에서 우리 쪽으로 건너오려 해도 올 수 없다(루카 16:26)." 이처럼 예수님은 연옥에서 천국으로 가는 것을 언급하지 않았다.

(3) 성경에서 기회는 단 한 번이다. "사람은 단 한 번 죽게 마련이고 그 뒤에 심판이 이어지듯이(히 9:27)." 이처럼 죽은 뒤에는 곧 바로 심판이 있으며 연옥이 있지 않다.

(4) 성경에 하나님의 용서는 모든 죄를 포함한다.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 있는 이들은 단죄를 받을 일이 없습니다(롬 8:1)." 이처럼 예수님 안에서 죽은 자들에게는 연옥이 필요 없다.

(5) 성경에는 예수님을 통해 연옥 없이 하느님과 화해한다. "곧 하느님께서는 그리스도 안에서 세상을 당신과 화해하게 하시면서, 사람들에게 그들의 잘못을 따지지 않으시고 우리에게 화해의 말씀을 맡기셨습니다(2코린 5:19)." 이처럼 하느님의 은혜로 하느님과 화해한다.

(6) 성경에 예수님은 완전한 희생 헌물을 드렸다. "한 번의 예물로 거룩해지는 이들을 영구히 완전하게 해 주신 것입니다(히 10:14)." 이처럼 연옥을 주장하는 것은 예수님의 희생 예물이 완전하지 않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7) 성경에 신자들은 값없이 의롭게 된다. "모든 사람이 죄를 지어 하느님의 영광을 잃었습니다. 그러나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이루어진 속량을 통하여 그분의 은총으로 거저 의롭게 됩니다(롬 3:23~24)." 그러나 천주교는 값없이 의롭게 됨을 믿지 않는다(<천주교 사상 평가>, 마틴 로이드 존스, 그리스도예수안에, 190~192쪽).

다음으로 천주교에서 주장하는 연옥의 유래와 근거와 문제점에 대해 알아보자.

연옥 교리는 주후 593년에 교황 그레고리 1세가, 죽은 사람이 일시적으로 가는 정화(고통)의 장소인 연옥이라는 교리를 만들어 냈고, 1439년에 열린 플로렌스 공의회에서 이 교리를 공인했다. 그리고 16세기에 열린 트리엔트 공의회에서 연옥에 관한 교령을 통해 분명하게 공표했는데, 그 이유는 연옥 교리는 가톨릭이 종교개혁이라는 위기의 돌파구를 모색하던 시기에 신교와는 다른 구교의 정체성을 확보하고 내부 체제와 교리를 정비하기 위함이었다.

상기처럼 연옥 교리는 주후 600년경에 시작되어 15세기에 와서 공의회의 결정을 거쳐 정식으로 천주교 교리로서 자리를 잡았다. 왜 오랜 기간 동안 교회의 교리로서 제정되지 못하다가, 중세 시대 면죄부의 판매가 심화될 즈음에 교리로 제정되었는가? 많은 사람들은 종교개혁의 직접적인 원인이 면죄부 판매에 있다고 보는데, 면죄부 판매는 루터 당시에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연옥은 면죄부 판매를 위한 도구로, 적절히 이용되는 잘못된 교리로서 그 결정적인 원인을 제공한 셈이 된다. 따라서 연옥의 교리는 가톨릭의 대사부 교리와 뗄 수 없는 관계인 것이 증명이 된다. 연옥의 영혼들을 구원하기 위한 대사부 교리, 즉 조건부로 뭔가를 바쳐야 하는 것을 말하는데 이것은 대사부 교리와 관계가 있으며, 연옥에서 고통을 당하는 영혼들을 위하여 대사부 교리에 의한 면죄부 판매가 1190년에 본격적으로 허용되어 실시되었다.

이렇게 연옥 교리가 실행되면서 교회는 신자들로 하여금 거액의 헌금을 거뒀고, 또 교회는 그리스도를 대신하여 구원을 결정해 주는 결정권자로서 권한을 행사했다. 16세기 종교개혁 당시에도 로마가톨릭교회는 천국과 지옥의 중간 지점인 고통의 세계인 연옥에서, 평신도가 헌금을 통에 넣는 순간에 연옥에 있는 영혼들이 천국으로 옮겨진다고 거짓 교리로 신자들을 속였다.

오늘날 그러한 면죄부 판매는 사라졌지만 연옥은 여전히 그들의 교리로 존재하며 죽은 자들의 구원을 위한 사제들의 가르침에 따라서 신자들에게 더욱더 많은 선행을 강조하여 구원의 대가를 치르도록 가르치는 도구로 작용하고 있다. 그리하여 가톨릭 신자들은 구원을 위한 대가로써 연옥에 있는 조상이나 형제나 자매들을 위해서 선행을 나타내고, 또 자신들을 위한 보속을 위한 대가로써도 그렇게 하고 있는 것이다(<성경적 관점으로 본 로마 가톨릭>, 양향진, 가나다출판사, 131~136쪽).

그럼 이제 전직 가톨릭 사제들의 연옥에 대한 견해를 들어 보자.

(1) 스페인 출신의 호세 리코 신부는 가톨릭 신앙과 연옥 교리에 대해 이렇게 간증했다.

나는 로마가톨릭 사제가 되어 19년 동안 한 순간도 난파의 위험에서 벗어나지 못하다가, 마침내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하나님과 화목하는 평온한 항구에 도착했다. 나는 라틴 아메리카에 대한 개신교의 공세에 위협을 느낀 남아메리카의 주교들에게 초빙을 받아 조국 스페인을 떠났다. 스페인 사람들의 영혼에는 본능적으로 개신교를 반대하게 만드는 어떤 것이 자리 잡고 있다.

칠레의 안토파가스타에 도착한 나는, 주교좌성당 사제로서 개신교를 무너뜨리겠다는 내 계획을 실현시킬 수 있는 기회를 잡았다. 개신교 전도지를 보았을 때, 나는 일전을 벌일 준비가 되어 있었다. 혐오스러운 심정으로 전도지를 읽었다. 그리고 나중에는 과감하게도 내 서재에 들여놓은 개신교 서적들을 꺼내 읽어 보았다. 그런데 그때까지 개신교에 대해서 쌓아왔던 혐오감이 누그러지면서 조금씩 공감이 생기기 시작했다.

개신교의 모습이 그동안 들어 왔던 바와 달랐고, 로마가톨릭 신학교에서 가르치고 있는 바와도 현저하게 달랐다. 복음주의 서적들에는 성경의 거룩한 책들에서 이끌어 낸 심오한 가르침이 가득 실려 있었다. 개신교 성경과 로마가톨릭 성경 사이에는 로마의 출판 인가 표기가 없다는 점을 빼놓고는 차이를 발견할 수 없었다. 하지만 복음주의 신자들의 삶을 들여다보면 일반 로마가톨릭 신자들의 삶과 현저하게 달랐다. 내 충실한 교인들이 우리가 혐오하는 개신교 신자들처럼 도덕적으로 단정하게 살았으면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 뒤 히브리서를 공부하면서 연옥의 무용성과 거짓성을 깨달았다. 왜냐하면 히브리서의 저자가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자기 생명을 바치실 때 '죄를 정결케 하는 일(히 1:3)'을 하심으로써 우리를 정결케 하는 일을 완료하셨다고 말하기 때문이었다. 만약 그리스도께서 우리 죄를 정결케 하셨다면, 현세에서 구원을 받는 영혼들이 왜 다시 정결함을 받기 위해서 연옥으로 가야 한단 말인가? 연옥이 성경에 한 번도 언급되지 않는데, 과연 로마가톨릭교회가 말하는 연옥이란 어떤 것이란 말인가?

그 뒤 나는 예수님을 구주로 영접하고 구원을 받았다. 예수님이 나를 위해 십자가에서 죽었으며 그분의 피가 내 모든 죄를 씻어 내기에 전능하기 때문이었다. 하나님 앞에서 내 영혼을 깨끗이 씻어 주는 일에 로마교회의 의식들과 행사들과 인간의 전통들이 얼마나 무능하고 무익했던가? 그제야 나는 예수께서 하신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 나를 통하지 않고서는 아무도 아버지께 갈 수 없다(요 14:6)"는 말씀이 이해가 되었다. 그토록 오랜 세월을 그릇된 길에서 방황한 일에 대해서 용서를 구했고, 이제는 길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따라 살기로 작정했다. 19년 간 사제직을 수행해 오는 동안 계속된 비극은 이렇게 해서 막을 내렸다(<교황대신 예수를 선택한 49인의 신부들>, 아가페출판사, 리처드 베닛, 203~208쪽).

(2) 미국 출신의 밥 부시 신부의 가톨릭 신앙과 연옥 교리에 대한 견해를 들어 보자.

나는 1953년에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예수회에 들어갔다. 모두 13년에 걸쳐 신학교에서 공부하면서 이런 저런 강의를 다 들었고, 이런 저런 연구를 다 해 보았다. 마침내 신학 수업을 마치고서 1966년에 사제 서품을 받았다.

로마가톨릭교회는 미사가 땅에 사는 사람들과 이미 죽은 사람들의 죄를 제거하는 데 효과적인 속죄 제사라고 말한다. 그런 미사를 드리는 사람들은 미사가 연옥에서 체류하는 기간을 줄여 준다고 믿는다. 그렇기 때문에 죽은 자를 위하여 미사를 드리는 것이다. 하지만 사람이 죽으면 즉시 심판이 따른다. "한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하신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니(히 9:27)." 구원을 받은 사람이라면 즉시 천국에 간다. 하지만 여전히 자신의 죄에 머물러 있는 사람이라면 즉시 지옥에 간다. 지옥에 들어간 사람이 천국으로 자리를 옮기는 경우란 없다.

로마가톨릭교회는 미사가 속죄 제사이기 때문에 연옥에서의 체류 시간을 줄여 줄 것이라고 믿는다. 하지만 죄에 대해서 이루어진 모든 고난과 모든 속죄는 예수께서 십자가에서 다 이루셨으며, 우리는 이 진리를 받아들여야 한다. 우리는 아직 생명이 있는 동안 영생을 받고 거듭날 필요가 있다. 성경에는 죽은 뒤에 어떠한 변화를 경험할 수 있다는 생각을 뒷받침할 만한 증거가 없다.

로마교회는 앞으로도 계속해서 미사가 예수의 지속적인 제사라고 주장할 것이다. 그 교회는 유아들이 세례 받을 때 거듭나고 영생을 받는다는 교의들을 버리지 않을 것이며, 교인들에게 짐 지운 다양한 요구 조건들도 포기하지 않을 것이다.

지금도 나는 로마가톨릭 신자들을 진심으로 사랑하며 그들을 돕고 싶다. 그들이 성경을 따르는 데서 오는 구원의 자유와 생명과 복을 발견하도록 도와주고 싶다. 그리고 나는 어느 가톨릭 신자나 사제에게도 반감을 갖고 있지 않다. 그들을 결박하고 있는 것은 교의들과 교리들이다. 하나님께서 친히 그들을 풀어 주시기를 원한다. 예수께서는 "너희가 하나님의 계명을 버리고 사람의 유전을 지키느니라(막 7:8)"고 말씀하셨다. 그것이 지금 우리가 대치하고 있는 문제이다. 이러한 유전 곧 전승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파괴한다. 그것들은 성경의 진리들에 위배되기 때문이다.

내가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겪은 것 중에서 가장 큰 변화에 직면해 있다는 것을 알았다. 지금까지 로마가톨릭교회를 철저히 믿었고, 인생의 많은 기간 동안 그 교회를 섬겼기 때문에 내게는 그 순간이 대단히 고통스러운 시기였다. 나는 귀국하면서 내가 로마교회를 떠나지 않을 수 없으리라는 것을 알았다.

1987년에 나는 사직서를 쓰고 과거 나의 상관들이었던 사람들에게 내 뜻을 전함으로써 정식으로 로마가톨릭교회를 떠났다. 떠나기 전에 마지막으로 로마에 편지를 보냈다. 그렇게 한 이유는 그들 모두에게 증거를 하고 싶었고, 그들에게 내가 떠나는 이유를 설명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나는 성경을 따르기를 원했다(앞의 책, 83~94쪽).

(3) 인도 출신의 사이먼 코투 신부의 가톨릭 신앙과 연옥에 대한 견해를 들어 보자.

나는 로마에서 사제가 되기 위한 교육을 받았다. 그 뒤 신학 박사 학위를 받았고 인도 코타얌 대학에서 경제학 교수로 활동했고, 인도 우차부르에 있는 스데반대학의 학장을 지냈다. 이런 높은 지위들은 내게 사회적 명예와 물질적 번영을 주었다. 그러나 사제로서 25년을 봉직하면서 다양한 의식들을 집례하는 순간조차도 영적인 기쁨이나 영혼의 평안을 얻지 못했다.

나중에 내가 로마가톨릭 사제직을 버리고 회심하여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거듭난 일을 간증하게 된 것은 그리스도의 사랑에 강권을 받았기 때문이다. 25년간 나는 로마가톨릭교회의 의식을 엄격히 준수해 온 사제였다. 하지만 사실 가톨릭교회의 의식 체계란 하나님의 기록된 말씀에 대한 어둠과 무지로 이루어진 거대한 난공불락의 요새였고, 나는 그 속에 갇혀 있었던 것이다.

과거에 나는 아주 심각하게, 끈기 있게, 진지하게 죽은 성인들에게 중보를 간구했고, 연옥에 있는 죽은 자들을 위해서 기도했다. "하나님은 한 분이시오 또 하나님과 사람 사이의 중보도 한 분이시니 곧 사람이신 그리스도 예수라(딤전 2:5)"는 성경의 가르침을 몰랐던 것이다. 그리스도께서만 신자를 위하여 죽으셨고, 죄에 대한 완전한 보속을 치르셨다. 이것이 사실이기 때문에 성경에는 죽은 영혼들이 고통 속에서 죗값을 치른다는 연옥이라고 하는 곳이 전혀 언급되지 않은 것이다(앞의 책, 143~145쪽).

(4) 이탈리아 출신의 존 자논 신부의 가톨릭 신앙과 연옥에 대한 간증을 살펴보자.

나는 이탈리아 북부에서 가난하지만 독실한 로마가톨릭 부모 사이에서 태어났다. 장성한 후에는 추기경에게 사제 서품을 받은 뒤 미국으로 파견되었다. 미국에 가서 몇 년 뒤 일부 개신교 방송을 들었는데, 설교자들은 "만민에게 복음을 전파하라(막 16:15)"는 그리스도의 명령을 정말로 이행하고 있는 것 같았다.

내가 로마가톨릭교회에 있음으로써 얼마나 올바른지, 그리고 그 교회의 밖에 있는 사람들이 얼마나 그릇된지를 검증해 보기 위해서, 나는 성경을 근실하게 기도하는 심정으로 읽기 시작했다. 성경을 많이 읽고 기도를 더 많이 할수록 로마교회가 얼마나 잘못되었는지 분명하게 알 수 있었다. 요한복음에서 나는 다음과 같은 말씀들을 읽었다.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요 1:12)" 그리고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요 3:16)."

우리의 구원이라는 대단히 중요한 문제에 대해서 성경은 이보다 더 분명하게 가르칠 수가 없었다. 나는 로마가톨릭 사제였는데도 내 영혼의 구원을 확신하지 못했다. 그런데 성경을 읽으면서 사제로서의 열정과 선행으로 나를 구원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성경에서 이런 구절을 읽었기 때문이다. "너희가 그 은혜를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었나니 이것이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입 2:8~9).". 이 구절이 로마가톨릭의 가르침에 대한 내 신뢰를 흔들어 놓았다.

지금까지 나는 로마의 모든 가르침을 맹목적으로 받아들였다. 로마가톨릭 신자에게는 선택권이 없었다. 로마의 교리들을 아무런 의문도 제기하지 않고 그대로 받아들이거나, 그렇지 않으면 파문을 당하는 길밖에 없었다. 나는 로마교회에 대한 모든 것을 의심하기 시작했으므로 성경을 이전보다 더욱 근실하게 연구하기 시작했다. 그 과정에서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치르신 제사가 인류를 구원하기에 충분하다는 것을 발견했다.

"이 뜻을 좇아 예수 그리스도의 몸을 단번에 드리심으로 말미암아 우리가 거룩함을 얻었노라(히 10:10)." "저가 한 제물로 거룩하게 된 자들을 영원히 온전케 하셨느니라(히 10:14)." "저가 저 대제사장들이 먼저 자기 죄를 위하고 다음에 백성의 죄를 위하여 날마다 제사 드리는 것과 같이 할 필요가 없으니 이는 저가 단번에 자기를 드려 이루셨음이니라(히 7:27)." 이러한 말씀대로라면 미사나 고해성사나 연옥이 아무런 필요가 없었다. 유일한 참 교회의 교리라고 말하던 것들이 모두 로마교회가 고안해 낸 것에 불과하다는 것을 나는 깨달았다(앞의 책, 242~244쪽).

지금까지 몇몇 신부들의 간증을 통해 그들의 가톨릭 신앙과 연옥의 거짓 교리에 대해 살펴보았다. 결론적으로 천주교의 연옥 교리는 로마가톨릭교회가 인위적으로 고안해 내어 만든 비성경적인 거짓 교리이다. 이것은 상술했듯이 중세 시대에 교회 건축을 위한 면죄부 판매가 심화될 즈음에 교리로 제정되어 시행되었다. 이러한 연옥 교리는 신자들로 하여금 금전을 편취하여 교회를 유지하고 성장시키기 위한 수단과 목적으로써 가톨릭에서 날조하여 만든 비성경적인 거짓 교리에 불과한 것이다.

이것은 마치 개신교회가 성경에 없는 성직자인 목사 제도를 만들어 내어 평신도와 구분시켜 교회 내에서 일인 사제 노릇을 하게 하고, 또 국내의 개신교회가 신약성경에 없는 헌금 제도인 십일조를 만들어 내어 신자들에게 강요하는 것과 같이, 모두가 다 자기네 교회 체제를 유지하고 성장시키기 위한 수단과 목적에 불과한 것과 다름 아니다. 여하튼 기독교 신자들은 천주교의 연옥 교리가 헛된 속임수(골 2:8)임을 직시하고, 그러한 거짓 교리에 미혹되지 말고 어떤 교리나 제도들도 성경에 나타난 대로 믿어야 할 것이다.

권영문/전 경성대 교직원, 현 기독교 칼럼니스트·<성경적 기독교와 엉터리 기독교>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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